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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삶 남은 공부

불교가 허무주의라고요? 누가 그래요?🥰(2)

by 행복살이 2022.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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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어서 계속 써봅니다.
앞편의 질문, 한번 생각은 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불교가 허무주의라고요? 누가 그래요?🥰(1)

불교가 허무주의라고요? 누가 그래요?🥰(1)

오늘날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분들에게 참 여쭙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또한 지금껏 수많은 지혜를 알려준 성현들까지 대놓고 무시하는 분들에게도요. 우리, 가끔 하는 우스개 소리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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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 보니, 묘하게 저는 시리즈로 작성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기네요.
함축해서 짧게 쓰는 기술이 제게는 많이 부족한가 봅니다.ㅎㅎ.


자, 이제 어떤 면에서 허무주의가 아닌지, 구체적으로 한번 들어가 볼게요.
그동안 오해를 가지셨던 분들에게, 조금이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처님 말씀을 간단히 요약하면요.

"실상"과 "허상"을 보고, "허상"에 붙잡혀 살지 말아라.
그게 다 괴로움의 원인이니 괴롭게 살지 말아라.


그게 다입니다.

말뜻이 아직 익숙지 않은 사람들 기준으로 해보면,
실상을 아직 모르겠으면, 최소한 이러이러한 것들(수많은 경전과 설법에 나오는 예들)이 허상임을 알고,
그것들에 지나치게 끄달리고 휘둘리지 말아라.

요 정도로 우선 이해하시면 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앞으로 추가로 쓰게 될 이야기들에 또 올릴 테니 잠시만 참아주시고요.
우선, 두가지 측면에서 설명을 드려볼까 합니다.

1. 오온이 공(空)하다. - 오해의 시초.

아마도 마음 공부 안 해본 분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거예요.
'색즉시공'이니 뭐니 하는 소리들요.
반야심경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예전에 코믹영화 제목으로 유명해져서 ㅎㅎ.
(영화를 안봐서 내용은 모릅니다만, 뭐 좋은 뜻을 숨겨두었으리라 짐작만 해봅니다.^^)

아무튼, 오온이란 무엇인가부터 알아봐야겠지요?

잠시 위키피디아 옮겨봅니다.

5온(五蘊, 팔리어: pañca khandha, 산스크리트어: pañca-skandha)은 불교에서 생멸 · 변화하는 모든 것, 즉 모든 유위법(有爲法)을 구성하고 있다고 보는 (色) · (受) · (想) · (行) · (識)의 다섯 요소를 말한다.

이들을 각각
색온(色蘊: 육체, 물질) · 수온(受蘊: 지각, 느낌) · 상온(想蘊: 표상, 생각) · 행온(行蘊: 욕구, 의지) · 식온(識蘊: 마음, 의식)이라고도 부른다.

5온을
5음(五陰), 5중(五衆) 또는 5취(五聚)라고도 한다.

뭐 복잡하게 생각하실 것은 없습니다.
단순한 예로 "우리의 일련의 사고의 흐름(과정)"을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현재 몸이 있기 때문에, 그 몸의 감각기관으로 대하게된 물질(세상 혹은 세상사).
그것을 대하면서 받는 느낌. 감각.
그에 따른 표상이나 생각. 또 그것을 기준으로 일어나는 행위나 의지.
마침내는 그렇다! 라고 굳어져버리는 인식.
곧, 자동 프로그래밍되어 저장된 관념이 되어버립니다.

이러한 "전도된 망상"이라 부르는 잘못된 허상으로 이어지는 과정 말입니다.
살면서 이런 경험들은 있으시지요?

나도 모르게 가지고있던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어떤 계기였든, 어느날 문득 다시 보니 그것이 잘못된 것이었더라는 것.
놀라 되짚어본 그 시작은 생각보다 어이없게 출발했더라는 것.

느껴본 분들은 알아들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것을 좀 더 크게 확대해 보면요.
나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대하는 방식들에게까지 확대가 됩니다.

벌써부터 어려우시지요? ^^

그런데요.
사실은 익숙하지 않아서일 뿐,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랍니다.
누구도 그런 식의 접근이나 설명을 해주지 않았을 뿐이지요.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곧 상(相)이라는 용어로도 쓰는 놈이요.
잘 알려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거나, 더 줄여서 마음 심(心) 자 하나라고 한 것이지요.
오온에 따른 그 허상들 다 마음에 달린 거란 뜻에서요.

어차피 다음 편에 이 부분을 더 설명드리려 마음먹었으니, 지금은 조금만 참아주세요. 😊

2. 네가지 상(四相, 모양)의 타파.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인도의 주류 철학 중의 하나였던 주장이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운명론"인데요.

운명론에는 분명 일정 부분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이 있기는 합니다.
인과의 법칙에 따른, 원인에 대한 결과로서 볼 때는 말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것 또한 한 시점의 경계일 뿐이며,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이라.
그 고정되고 좁은 소견의 한계를 밝혀내셨지요.

우리 생각에도 안그렇던가요?
의지가 달린 짐승이 정해진 것만 하는 컴퓨터 프로그램과 어찌 같을까요.
매일매일, 매 순간순간이 다른 것을요.

그 모든 것은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는 사실.
미래는 정해진 바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그 어디에도 머무름이 없이 가라는 말씀을 해두셨고요.

오늘날에도 "내 팔자가(운명이) 그렇다!" 혹은 "정해진 운명은 못 벗어난다!"라면서 한탄하는 분들 있지요?
그 순간만을 보면서 만든 인식으로 스스로 괴로워합니다.
그 시대에도 그런 철학이 있었답니다. 신기하게도.

네.
이 부분 또한 오온의 다른 시각에 이어, 다시 올려드리겠습니다.
이미 머릿속에 글을 올릴 순서도 짜지니, 저는 기분이 좋네요. ㅎㅎ.


이제 저 두 가지의 측면에서, 비난할 때 하는 대표적인 예를 들어 볼게요.
"불교에서는 내가 없단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라는 말들을 하지요?

무아(내가 없다)라는 뜻은,
"나"라고 하는 잘못된 관념들과 편견들과 인식들이 다 허상이니, 그 허상 버리고 괴롭지 말아라.
라는 것이지, "나는 없는 것이니 허무하다!"가 아닙니다.
(더 깊은 뜻은 지금 꺼낼 단계도 아니니 또 킵해둡니다.)

말인 즉, 깊은 뜻이 있음은 알아보지도 않고, 그저 손가락질하기 편한 자기 어리석음에 편승한 꼴인 것이지요.

생각해보세요.
태어나서 지금껏 "나"라고 규정하고, 규정받은, 그 많은 상호작용들(오온).
그중에 참다운 것이 몇 개나 있는지요.

끊임없이 변해왔고, 변해가고 있지 않는가요?
어디 "나"라는 놈이 고정 불변해서,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가요?

그놈 몸뚱이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던가요? 하는 생각은 또 어떻고요?
백 년 후에도 지금처럼 살아나 있을까 봐요?

부처님께서는 바로 그런 착각들에서 깨어나라 하신 거랍니다.
오온이 바로 그런 착각들을 만드는 작용이라.
그런 착각들이 다 허상이며, 그 허상들로 인해 괴로워하니, 그 허상들 버리라 말씀하신 거지요.

지금 저 물음표를 반대로 돌려보면, 지금 하고 있는 고민(괴로움)들이 되는 거 눈치채셨나요?

<"나"라는 이름의 규정 덩어리> 붙잡고, 지금도 끙끙 싸매고 아파들 하시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없다고 한 것을, 잘도 곡해들 합니다. 😊
규정 덩어리가 실체인 줄 아는 착각에서 벗어날 줄은 모르고, 가짜를 진짜라 믿는 어리석음인 것이지요.

그러한 허상들은 "나"라고 예를 든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 내가 사는 삶에서,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부처님 또한 정해진 틀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권력자들, 부자들도 만났고, 빈자들도 만나며.
복 있는 자들에게는 복의 증장을, 복 없는 자들에게는 복이 생기는 삶을 권하셨으니까요.

오죽하면 무재칠시(無財七施)라, 돈 없는 자들은 이렇게 복을 만들어라.라고 방법까지 설하셨을까요.


정리해봅시다.

허상이 아닌 실상에 눈을 뜰 것.(오온에 속지 말 것)
운명이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내 하기에 달린 것.(인과의 법칙)

막말로 "이놈들아! 고생 그만하고, 행복하게 좀 살아봐라~!" 이게 다예요.

즉, 없는 괴로움 만들지 말고, 그 어디에도 걸림이 없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라!

이게... 허무주의인가요?

여기까지 오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독 길어진 이번 포스팅이었네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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