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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삶 남은 공부

금강경 사구게(四句偈) - 세상을 통찰하는 지혜의 눈.

by 행복살이 2022.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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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전편에 4상을 말하고 나니, 또 자연히 금강경 소개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요.
갑자기 너무 어려워지는데~? 싶었거든요.

4상(四相)에 대한 이해. - 견해에 갇히지 말아라.

4상(四相)에 대한 이해. - 견해에 갇히지 말아라.

전편 링크를 또 해야 되는군요. ㅎㅎ 이야기의 연결은 아래 링크를 다녀오시면 연결이 되실 겁니다. 불교가 허무주의라고요? 누가 그래요?🥰(2) 불교가 허무주의라고요? 누가 그래요?🥰(2)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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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꺼냈으니 가는 수밖에 없지요? ㅎㅎ
어찌 됐든 앞편들을 보고 오신 분은 그나마 나을 거라 믿는 수밖에요.


원래는 "금강반야바라밀경"을 줄여서 "금강경"이라 합니다.
사구게는 또 그 경전의 내용 중에 중요한 4가지의 게송을 말하는데요.
이 금강경은 부처님의 제자 중의 한분인 수보리 존자와 부처님의 대화로 이루어진 경입니다.

껍데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니, 바로 사구게로 가보겠습니다.
한자말은 또 한자대로의 맛이 있지만, 어차피 안 보실 테니 바로 우리말 표현을 적습니다. 😅

1. 제 1 구게 : 제5장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 실다운 진리를 보라.

무릇, 모든 상(相)이 있는 것(함이 있는(有爲의 모든 현상))은 다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현상이 진실상이 아닌 줄을 보면 곧바로 여래(如來)를(진실을) 보느니라.


전편에 말씀드린 그 상(相)들, 대표적인 4상과
그 이외의 우리 스스로도 착각이었다 하는 아는 것들과 착각인지도 모르고 있는 모든 것들.

실상을 모르고 혹은 모른 채하며, 거르고 붙이고 더하고 뺐던 그 모든 상(相)들.

또, 그 전편에 말씀드린 그 "오온"이라 불리는 작용들.

바로 그러한 잘못된 시각에서 떠난다면 그 순간 바로 진실상(여래)을 본다 하는 말입니다.

있는 것, 있는 그대로.
네. 말은 쉽지요?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느껴온 바가 있는 사람에게는 마치 벼락이 치듯, 큰 파도가 일듯, 단번에 확 와닿는 말씀입니다.


2. 제 2 구게 : 제10장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 정토를 장엄하다.

마땅히 색(물질, 형상)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소리, 냄새, 맛, 감촉(부딪힘), 어떤 법(마음의 대상, 이치)에도 머물지 말고 마음을 내어야 한다.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쉽게.
"집착하지 않는 마음" 정도로 우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더 깊은 뜻은 가볼 사람에게 와닿을 일이니, 이것도 뺍니다.

여기에도 나오지만, 전편에 말씀드린 오온.
오온[五蘊] - 한 물건이 수만가지 물건으로 둔갑하는 이유.

오온[五蘊] - 한 물건이 수만가지 물건으로 둔갑하는 이유.

전편에서 다시 올리겠다 한 것들 이제 시작합니다. 이야기의 연결은 아래 링크 먼저 다녀오시면 아실겁니다. 불교가 허무주의라고요? 누가 그래요?🥰(2) 불교가 허무주의라고요? 누가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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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온의 시초인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
보이는 모습,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들...

즉, 우리 몸의 감각기관과 그로 인해 생기는 관념들을 불교에서는 "12처(處)"라 하는데요.

우리 내부 인식 기관으로서 눈, 귀, 코, 혀, 몸, 뜻(생각).
그것으로 인식하는 외부 대상에서 오는 모습, 소리, 냄새, 맛, 촉감, 마음의 대상.
합쳐서 열두 곳을 말합니다.
각각 대응을 하는 것을 보면 아시겠지요?

말하자면, 저것들이 합치고 떨어지고 뒤섞이고 하면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인데요.

그야말로 익히 말씀드린 모든 상들이자, 아래 나오는 현상계의 났다가 사라지는 것들이라.
특정한 어디에 머물러 고집피울 것도, 주장할 것도 없는 레벨의 것들이라는 사실...
이거 참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이제, 이것을 꿰뚫어 보는 사람과 여기에 휩쓸리는 사람의 차이가 생겨납니다.

한 때의 모습을 보고, (일시적인 모습인 줄 모르고) 그것이 고정불변 실재한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요?

잘 살펴보니, 이것도 변하고 저것도 변하는구나.
- 이런 통찰력을 가진 분은 수가 적습니다.


사실은 지금 눈앞에서 변해가고 있는데도, 변하지 않는 것으로 착각들을 많이 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역사적인 필름들을 보여주면, 와 많이 변했네? 하면서도,
자기 몸이 변한 줄은 모르고, 자기 마음이 변해온 줄도 모르고, 자기가 쓰던 물건이 변한 줄을 모릅니다.

여담입니다만, 오늘날에는 물리학에서 모든 존재가 다 파동이라고들 한다지요?
이미 2천5백 년 전에 그 말씀을 해두셨는데....


3. 제 3 구게 : 제26장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 법신(여래)은 상(모양)이 아니다.

만약 형상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서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함이니, 능히 여래(진실)를 보지 못하리라.


아마 제일 알아듣기 쉬운 말씀이지 싶어, 이 부분은 간단히 할게요.
모든 성자들이 다 한 말씀으로 해두셨지요?

형식에, 모양에 따른 것이 어떤 어리석음인지 말입니다.
헌데 인간들은 그 말씀도 또 곡해를 하니.

예수님 말씀처럼, "믿는 마음은 없고, 믿는 모양만 있는 자들"에게 속지 말기를 바랄 뿐입니다.

나무로 된 십자 모양에 절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금칠한 쇳덩이에 절하는 것이 아님을.
언제쯤이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해를 할까요?


4. 제 4 구게 : 제32장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 응화신(관념)은 참된 것이 아니다.

모든 현상계의 생멸법은 꿈이며 환상이며 물거품이며 그림자 같고,
또한 이슬 같으며 번개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


전에 이 이야기를 어디선가 적었던 것 같네요.
우리가 만년을 산다면, 천년짜리 의심은 해소되지 않겠냐... 하는.
실제 나이가 들면, 젊어서 이해 못 하던 것들을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긴 시야를 가져보라는 뜻에서 말씀드린 것이었습니다만.

그러나, 십만 년 백만 년을 산다 한들, 자기의식이 깨어나질 않으면 그것도 다 무소용이지요?

현상계란 무엇일까요? 생멸법은요?
어려운 거 하나도 없어요.

작게, 앞에도 적었지만 몸이 있어 그 기관으로 접하기는 하지만,
그 범위란 얼마나 작던가요.
가시(눈으로 볼수 있는) 광선을 벗어나는 빛은 볼 수 있던가요?
듣는 범위를 벗어나는 소리는요?
만져지는 범위를 벗어나는 촉감은요?

네. 그 범위를 크게 하는 과학기술이란 놈이 있으나, 그래봐야 고작 현재까지 알게 된 관측의 범위일 뿐이지요?
그 범위를 벗어난 것들은 여전히 모르고들 있지 않습니까.

옛날보다 범위는 커졌으되, 그렇다고 과학이 어디 현상계를 벗어나 있나요?
그저 인식의 범위를 넓혀가는 과정일 뿐인 것을, 불변의 기준으로 맹신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기존의 한 법칙이 무너지고, 새로운 법칙이 정립되는 것들 많이 보셨잖아요.

인간들이 살아온 역사를 봐도 나옵니다.
지구는 평평했지요?
태양이 지구를 돌았잖아요. 그리고 그게 옳은 법인줄 알았었고요.

쉽게, 내 개인사만 돌아봐도 나옵니다.
십 년 전의 나는 뭐했어요?

좀 전에 마시던 커피만 봐도 나오잖아요.
그 커피 어디 갔어요?

이런 것들이 현상계의 생멸법이랍니다.
어찌 났다가 어느새 멸하여 사라지는 것들이지요.

꿈에서 깨었으니 꿈이라 하고, 맺혀있던 이슬은 잠깐 햇살에 돌아섰다 다시 보면 없답니다...


네. 맞습니다.
익숙지 않은 분들에게는 "대체 뭔 소리냐~??"라고 할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여기까지 읽어온 분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겠지요. ㅎㅎ

여기까지만 해도 인연이 있는(복이 많은) 분들이니까요.
이런 이야기 일언반구도 못 듣고 한 생을 보내는 사람이 허다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실상과 허상에서.
실상까지는 모르겠고, 적어도 눈앞의 일들에 대한 허상들이라도 조금씩이나마 보이기 시작한다면.
그 보이는 만큼씩, 삶에서 짊어진 고생 덩어리가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 범위가 확장이 되면 될수록.
"허무"가 아닌 "참됨"의 시선이 생김을 알게 됩니다.
행복과 자유가 어디에 있는지, 확장이 되면 될수록 잘 보이게 됩니다.
이제 양극단으로 가지 않고, 어디에도 휩쓸리지 않는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얼핏 보면, "저러니 허무하다고 하지." 하는 어리석음에 써먹기 딱 좋지요? 😊
사실은 그 속에 영원하고픈 망상, 움켜쥐려는 탐욕, 죽지 않으려는 공포.
그따위 것들이 제 속에 또아리 틀고 있는 것은 모르고...
허상을 진실로써 가지려는 욕심과 어리석음이 눈을 가린 거란 말이지요.

하지만, 어찌할까요?
마음에 머무르는 바. 말하자면 붙잡힘이나 집착이 생기게 되면 누가 괴롭게요?
그것도 있지도 않은 허상덩어리들에 말입니다.

그리 하는 본인만 괴로울 뿐인 것을요.
벗어나라 하는데도 벗어나지 않고서 괴로워하니...

간단한 오해 하나를 풀어보고자 한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저로서는 뭐 좋은 계기였다 생각이 드네요.

이제 다른 풀어볼 것, 떠오르는 것들이 있기는 한데요.
다음 기회에 또 풀어보겠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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